다시 KTX 승무원 얘기를 하려고 한다. 900일 지났다. 햇수로 3년. 2005년 3월에 파업에 들어가 꼬박 3년을 채웠는데도 여전히 KTX 승무원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7월 1일부터 서울역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는 오미선 철도노조 KTX승무지부장을 만났다. 3년 기간 동안 안해 본 것 없는 투쟁 다해봤다고 했다. 이 인터뷰는 그녀의 얘기다. 그리고 우리의 얘기다.
KTX 승무원들이 서울역에서 아직도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서울역은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곳으로는 최악이다. 노숙자가 많기도 하지만 서울역 노숙자들이 제일 거칠다고 했다. 이들은 천막 농성장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시비를 건다.
= 노숙자들이 와서 뭐라 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그래서 남자분들이 같이 있어줘야 해요. 1,000원만 달라, 물 좀 달라 이러다가 천막 앞에서 소변도 보고 그래요. 어쩔 땐 대변도 보고요. 밤에는 취객들이 토하고요. 비오는 날에는 비가 새니까 밤에 잠을 잘 못자고 그렇죠.
인터뷰 하는 도중에도 한 노숙자가 왔다. 돈을 달라고 하더니 못 준다고 하자 웃통을 벗으려고 했다. 오 지부장이 고개를 돌리고 허탈하게 웃었다.
오 지부장은 몰랐지만 사실은 인터뷰하는 도중에 오 지부장 뒤에서 또 누군가가 대낮에 자신의 물건을 꺼내 방뇨를 했다. 놀랐지만 “지금 뒤에서 방뇨하는데요” 하고 굳이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파업 초기부터 KTX 승무지부는 노동자들 파업 치고는 언론의 대단한 관심을 받았다. 누군가는 ‘호강’이라는 표현도 썼다. 어떤 노동자들은 파업해도 신문에 기사 한줄 안 나는데 텔레비전에 신문에 그렇게 많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부럽고 샘이 난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KTX 승무원 파업에 대한 악성 댓글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얼굴만 믿고 공사 들어가려고 한다’, ‘뼈 빠지게 공사 입사 준비하고 있는데 데모 했다고 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인거 알고 들어왔으면서 정규직 꿈꾸냐?’ 등등이다.
= 알지요. 그런 댓글 있는 거 아는데. 제가 이런 얘기 정말 3년동안 계속 해왔는데요. 솔직히 저희 승무원 되고 싶어서 KTX 왔어요. 비정규직이지만 1년 있으면 정규직 될 수 있다고 해서 들어왔죠. 영어면접, 인‧적성 검사를 비롯해서 승무원 업무에 필요한 시험 보고 들어온 거예요. 그냥 얼굴 반반해서 들어온 것 아니에요. 그리고 KTX 승무원은 정규직이 없어요. 이게 문제인거죠. 처음부터 정규직이 없는거예요.
"일을 하고 싶어요 정말. 그러면 모든게 다 좋아질 것 같아요"
그래도 3년이면 너무 길다. 군대도 2년이면 제대인데 3년을 투쟁을 벌였다고 하니 어떻게 해서 이렇게 독해졌을까?
= 처음부터 3년 하라고 하면 못했죠. 당연히. 투쟁을 하다 보면 중요한 시기가 있어요. 그런 시기를 넘기다 보니까 3년이 된 거예요. 이런 거 투쟁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직까지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은 거지요.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3년간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갖은 고생을 다해도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요원한데 그런데도 후회하지 않았다니 이상하다.
= 투쟁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그가 이 말을 하고는 갑자기 휴지를 손에 든다. 그리고 잠시 후에 얘기를 이어갔다.
= 솔직히 자기 최면 같아요. 후회해 버리면 슬프잖아요. 이렇게 했는데 후회한다고, 잘못했다고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이렇게 힘들어도 반면에 얻은 것도 있지 않나 이렇게 스스로 설득하는 것 같아요. 오미선 지부장이 인터뷰를 하다 눈물이 나려고 하면 하늘을 올려다 봤다.
이런 인터뷰는 싫다. 사람은 얘기하고 싶어도 해서는 안되는 얘기가 있고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얘기가 있다. 지금 인터뷰는 그저 속상한 기억만 되새김질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또 아픈 곳을 물어본다. 먼저 이탈한 동료들 얘기다.
= 만나죠. 지금도 자주는 아니지만 연락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빈정 상했죠. 누군 안 힘드나. 자기들만 힘드나 그런 생각 한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지금은 이해해요. 나간 사람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해요. 얼마전에 만났을 때는 솔직히 그만 두는 방법을 물어보고 싶었어요. 힘들어요.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어떻게 그만 둘 수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난 용기가 없어서 그만두지 못하고 있나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진심으로 이 긴 투쟁을 접고 싶었나 보다. 오랜 기간 싸워오면 몸도 마음도 상처를 받는다. KTX 승무원들은 최근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 문제가 해결되면 우울증 같은 것도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정말 일을 하고 싶어요. 이를 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승객들 모시는 일, 그 일을 하고 싶어요.
또 휴지를 집는다. 눈물을 닦는 가 싶더니 그저 매만지고만 있다.
= 제가 성격이 변했어요. 굉장히 열심히 하고 낙천적이었는데, 지금은 비관적이 됐어요. 옳은 게 맞는데, 우리가 정당한데, 이렇게 문제가 안 풀리니까 제 자신이 피폐해지고 있어요.
합의서는 무용지물이 됐다.
KTX 승무원 문제는 사실 몇 번 해결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운수노조 철도본부와 철도공사는 승무원을 직접고용한다는 합의문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도장을 찍는 순간에 이 합의는 틀어졌다. 그게 지난해 말이다. 그리고 당시 이철 사장은 그만뒀다.
= 합의문 만들었을 때 아쉽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일단 끝을 맺었으니까. 조합원들끼리 조그많게 파티도 계획했는데 안되더라구요. 마지막에 다 틀어졌을 때는 등골이 싸하다고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철도공사는 2008년 5월 현재 KTX 승무원 복직과 관련해 어떤 진전된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철도공사는 KTX 승무원을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뽑았다. 공기업이 아예 작심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한 것이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다. KTX 승무원의 복직은 단순히 지금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KTX 승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KTX 승무원은 꼭 복직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오미선 지부장에게 문자가 왔다. 인터뷰를 하고나서 마음이 풀린 경우도 있고 더 답답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후자라고 한다. 지금 오미선 지부장의 마음상태가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안티가 없게 잘 써달라고 했다.
기륭전자 노동자가 70일 가까이 단식을 하고 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용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KTX 승무원 노동자가 300일이 넘게 싸우고 있다. 그래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