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은 오늘 나를 버렸어. 20년간 그와 함께한 수 천개의 내 동료들은 낡아서 더 이상 쓸 수 없어서 버려졌지만 오늘 그가 나를 떠난 이유는 그게 아니야.
그가 나를 버릴 때 흔들리는 손을 보면 알 수 있었어. 그는 발레를 그만둔거야.
내가 없으면 그는 발끝으로 춤을 출 수 없었어. 그렇게 하려고 나는 동전 두 개 만한 앞코와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바닥을 가지고 태어났지. 그 때문에 주인의 발은 굳은 살이 박혀 흉직해졌지. 발톱까지 갈라지고 벌어지기 일쑤고.
우린 엄청난 경쟁을 뚫고 선택받았기 때문에 이런 생활을 숙명으로 알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주인은 이제 내가 필요없어졌어. 그는 20년을 그렇게 살다가 이제는 그만두고 싶은게야. 나야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버려지지만 그는 그것도 아니야. 발레리나는 나이가 들면 안된데. 그래서 그는 이제 발레를 그만둬야 해.
평생을 춤만 추던 사람이 얼마나 막막하겠어. 난 나보다 그가 더 불쌍해.
그런데 왜 다른 미래를 생각하지 않냐고? 그와 매일 함께 있는 나는 이해할 수 있지. 쉬는시간, 밥 먹는 시간을 빼면 우린 계속 춤을 춰. ‘춤’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내 주인은 버려지기 전에 떠났어. 가게를 차렸다는 소문도 있는데 확실한 건 몰라. 20년 동안 세상물정 모르고 춤만 춘 사람이 갑자기 뭘 할 수 있을까?
내 주인은 ‘최고’였는데, 왜 그는 그렇게 떠나야 했을까?
위 글은 국립발레단 단원들의 얘기를 바탕으로 구성한 글입니다.
왜 ‘공공운수노동자’블로그에서 ‘발레리나’얘기냐구요? 발레리나도 ‘노동자’이거든요.
며칠 전 국립발레단을 찾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5,6년 차 발레단원들로부터 얘기를 들으며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단인 그들의 평균 연봉이 200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게다가 토슈즈 구입도 거의 본인부담입니다. 하루종일 춤을 춰서 오는 잦은 부상에서 오는 치료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레리나는 인대가 늘어나거나 삐는 정도는 작은 부상이라고 하더군요.
국립발레단은 우리 나라 최고의 발레인이 모인 곳입니다. 1년에 한명 정도가 100: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됩니다. 국립발레단 소속이 되기 위해 살인적인 경쟁을 치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온 국립발레단에서도 30대 중반이면 토슈즈를 벗어야 합니다. 나이가 든 발레리나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정년은 30대 중반입니다.
발레리는 결혼과 출산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배부른 발레리나는 없으니까요. 출산휴가도 꿈꾸기 어렵습니다.
“동료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데 출산휴가라뇨?”
단원들은 이런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은 포기했다고 얘기합니다.
한창 나이인 30 중반에 발레를 그만 둔 이들은 사실 아무것도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평생을 하루 10시간 이상씩 발레를 한 이들에게 사회는 또 다른 커다란 벽입니다.
발레단원들이 평생 신던 토슈즈를 한창 일할 나이에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가 발레리나를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기름때를 묻히며 일하는 사람도 아닌데, 문화예술인들이 무슨 노동자며 노동조합이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발레리나는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예술적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예술노동자가 맞습니다. 그들은 예술을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가 차를 만들 듯이 발레리나는 예술의 감동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노동자로서 자주적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갖고 있고 자신의 권익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뉴욕필하모니오케스트라, 베를린필하모니오케스트라, 비엔나필하모니오케스트라, 로얄발레단,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등 세계 유수의 공연예술단체들의 대부분, 그리고 명망있는 대다수의 프리랜서 문화예술인들이 이미 백 여년전부터 노동조합을 건설하여 스스로의 권익보호, 신장 및 문화예술발전을 위한 조합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예술인들 역시 문화예술노동자로서 헌법 제 33조에 명시된 국민기본권을 차별 없이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취임한 발레리나출신의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은 “발레단원들이 발레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실현되기위해서는 ‘발레리나도 노동자이고 노동자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는 일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