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공공운수연맹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김달식 본부장이 파업 시작 첫날인 13일과 14일 새벽에 일어난 일을 적은 것입니다]
서울본부에서 06시20분에 손석희 시선집중 라디오 인터뷰를 마치고 윤창호 국장(운수노조), 변종배 국장(화물연대본부), 그리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업무용 카니발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부산 총파업 출정식에 격려를 하러가기 위함이다.
오늘따라 서부간선도로가 거의 밀리지 않았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출근시간이라 상당히 밀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쉽게 서서울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들어왔다.
고속도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총파업을 선언한 첫날이기에 도로상에 차량이 얼마나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이다.
한참을 운행해 가는데 좀 전에 고민은 사라지면서 답답한 마음에 담아두었던 한숨을 몰아쉴 수 있게 되었다. 고속도로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였다.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트레일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택배(윙바디)차량이 가끔씩 눈에 띄었는데 이것역시 최근에 편법, 불법으로 제작한 번호판으로 증차를 한 것이어서 지금의 상황을 기회로(?) 대형화주들에게 인정받아 향후 물량을 얻을려고 하는 가미가제(?)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가 많은 것은아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경부고속도로까지 진입하였고 어느새 옥천휴게소에(하행) 도착하였다.
내가 현장에서 일할 때 자주 들리던 휴게소인데 평소의 습관처럼 중간지점인 옥천에 들어갔다.
휴게소 정면 좌측2층을 보면 휴게텔이란 곳이있다. 그곳에는 간단한 샤워를 할 수있는 곳인데 아침밥을 못먹은 상태였지만 현장에 있는 동지들에게 꾸질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것 같아서 2000원을 지급하고 샤워와 양치를 하고 나오는데 ‘이건또 뭐야?’ 차량판넬(전면)에 무언가의 글자를 써놓았다 ‘동 참’
동참이란 글자가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안테나에 걸린 붉은 리본은 투쟁을 상징한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해서 차주인 운전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60세가량의 늙은 화물노동자에게 ‘어르신 앞에 동참이라고 써인 글씨가 무슨뜻인가요?’ 라고 물었더니 ‘나는 화물연대 조합원 가입은 하진않았는데 화물연대의 파업에 동참하겠다는 뜻으로 이 글을 써서 다고 오늘 부산내려가면 하차하고 바로 동참할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평소같으면 화물차 주차라인이 그어진 곳에 주차할 공간이 부족해서 뒤편 가로수가있는 곳에 갓길 주차로 가득해야할 주차장이 설렁하기 까지 했다.
그리고 몇 대의 화물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모두 빈차였다.(적재함에 화물이 실리지 않았다.)
차주를 만나서 왜 빈차로 내려가는가를 물어왔다. 이유는 화물연대 파업에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될 까하고 싣고 내려가봐야 오히려 화물연대사람들한테 눈총이나 받을 것 같아서 오늘 내려가면 파업끝날 때 까지 집에서 쉰다고 했다.
일단 많은 대화를 할 수있는 여건이 못되서 고맙다는 말만 전하고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손살같이(?)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어느 도로로 가는 것이 빠를까 생각해봤다.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인 대진고속도로를 이용할까 아니면 대구, 부산간 민자고속도로를 이용할까 망설이다가 고속비는 조금더 들어가지만 시간은 단축된다고 하면서 문득 이런생각이든다. 고속도로가 전국적으로 여러갈래고 이렇게 잘 되어있는데 이 명박정부는 뭐한다고 대운하 건설을 한다고 난리를 치는 것인지 도대체 생각이 있는 양반인지......하는 생각에 차에 타고있는 다른 동료들과 잠시 이런 주제의 이야기로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대화를 하던중 피로가 밀려오는지 자꾸만 눈이 감겼다.
운전하는 동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한시간정도의 짜투리 잠을 잤는가 싶은데 부산이정표가 눈에 들어왔고
그때는 나는 머리와 얼굴을 거울에 비춰 확인하고 동지들을 만날준비를 하였다.
부산에 도착했을때 눈에 들어온 것은 부두에 컨테이너들이 가득장치되어있는 것이었다. 과히 장관(?)이었다.
평소는 4단으로 적재하던것을 5단으로 CY가득하게 적체되어있다.
부산지부, 위수탁지부 총파업 출정식 시간은 2시였다. 시계를 보니
1시 30분 정도였다. 부산지부 사무실 뒤편에 우리 동지들이 자주가는 돼지식당이란 곳에 들어가서 빨리 정식을 주문했고 게눈감추듯이 먹고는 신선대부두 앞으로 이동했다.
집회장소에 도착했을때 사전집회를 하고 있는듯했다. 누가봐도 허술해보이기 짝이없는 사전집회를 자발적으로 조합원이 단상에 올라가서 허술한 선동과 구호를 하고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허술하지만 조합원들은 그가 외치는 구호와 지시에 잘따라주었고 잠시 사전집회가끝나고 본대회를 진행하는데 부산지부 조직1부장이 본대회 사회를 진행하는데 역시 허술했다. 자주 실수를 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럴때 마다 조합원들은 질타를 하지 않고 힘내라고 박수로 격려해주는 모습에 성숙된 조합원의 모습을 엿보았다.
파업투쟁을 준비해가는 조합원들에게 격려사를 통해 힘을 실어주는 발언과 힘차게 투쟁할 것과 연대단위의 지지투쟁들을 알려주었다.
철도본부의 대체수송거부, 항만운송본부의 하역, 수송거부등을 알려주는 순간 조합원들은 일제히 큰박수를 보내주었다.
부산, 위수탁지부 조합원들이 집회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다시 울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시간이 조금더 소요되었는것 같다. 울산지부 투쟁거점장소인 덕하4거리에 도착을 하였다.
현장에 있는 간부들과 조합원들을 반갑게 만난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오후 7시에 울산대공원에서 울산시민들과 함께하는 촛불집회에 참가를 하였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약 400여명이 함께했고 곳곳에 울산시민들이 자리를 찾아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전행사라기 보단 우선 나의 일정이 바쁘다보니 먼저 격려의 발언시간을 갖게 되었다.
약 10분정도 나도 모르게 떠들었던 것 같다. 우리의 생존권문제, 이명박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3가지 미친소 수입반대, 대운하 건설반대, 공공부문 사유화, 민영화 반대 관련한 내용으로 발언을 하는데 너무 흥분해서 그런지 시간이 길어졌다.
울산지부장이 너무 길게한다는 사인이 들어와서 발언을 종료하였다.
나도 흥분하면 내자신이 제어가 잘 안되는 것 같다 ^^*
사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대운하 문제, 그리고 공공기업 사유화한다는 말만 들으면 흥분이 되고 화가치밀어서 컨트럴이 잘 안된다.
암튼 동지들과 짧았던 시간이 아쉽지만 포항지부에서 기다리고 있는 조합원들과의 약속시간이 있기에 다시 차에 몸을 싣고 열심히 포항으로 달려갔다.
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8시 30분쯤.... 400여명의 조합원들이 대강당에서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고, 나머지 200여명의 조합원들은 현장사수를 위해 경비근무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받았다.
한마디로 전쟁터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철강을 주로 생산하는 포항은 주로 대구, 경북, 포항지역의 화물노동자들이 화물을 수송하는데 이 지역에서는 파업시 많은 동참과 협조가 있있는데 꼭 현대중공업 업체만 경찰을 앞세워 물량을 수송해들어오는데
문제는 왜 경찰이 화물차량을 인도해서 들어오느냐에 대한 분노로 조합원들과 잦은 대치가 이루어 진다.
조합원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현대중공업 자가용 트레일러에 철판을 상차해서 진행을 하는데 선두에 경찰차량이 경광등을 키고 에스코드를 해가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화가나서 진행중이던 차량을 세워 따져물었다. ‘왜 경찰이 화물차량의 운행을 앞에서 도와주느냐?
경찰의 업무가 그렇게 없느냐? 언제부터 화물차량들에게 그렇게 우호적이고 도움을 주었느냐?’ 따지고 드느까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라고 했다. ‘윗선 누구말인가? 지방청장이 그렇게 지시를 했나? 청장이 그렇게 지시를 했나?’ 를 집요하게 따지고 드니까 ‘우리 입장도 조금이해해 달라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화물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전 국민들에게 송구함을 무릅쓰고 총파업을 감행했는데 대기업에서는 공권력을 앞세워 마치 화물노동자가 직접운행을 하는 것 처럼 연출하고 그러한 연출장면을 통해 회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화물노동자들을 협박, 회유를 하고 있는 사실에 정말 분노가 치솟는다.
그렇게 두어시간을 싸우다 서울로 발길을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집을 코앞에 두고 홀몸도 아닌 와이프에게 전화한통을 안하고 온다는 것이 왠지 와이프에게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에 양심상 도저히 그냥 이동하기 뭐해서 전화한통을 걸었다.
‘내다! 내 포항왔다가 워낙 바빠서 서울로 바로 올라가봐야 할 것같다.’
라고 전화했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런데 어디있어요? 잠시라도 얼굴보고가요!!’ 라고 한다.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와이프에게 미안했다.
그러곤 잠시후 포항지부 거점 투쟁현장 장소로 양말, 면티하나를 챙겨서 와서 5분정도 별말도 못나누고 발길을 돌렸다.
마음이 정말 씁쓸했다. 뭔가모를 외로움과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런 기분도 잠시 화물노동자의 생존권을 만들어내고 제도적 장치를 굳히기 위해 이번 투쟁은 너무나 절박하고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사명감에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경부고속도로로 힘차게 악셀을 밟았다.
칠곡휴게소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화물차량이 몇 대가 보인다. 또다시 마음이 씁쓸해진다. 먹고살만해서가 아니라 우월적 지위에 있는 화주의 협박에 못이겨 이렇게 길거리로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눈총을 맞아가며 나왔다는 이해와 함께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드는 것은 왜일까?
내 자신에게 이렇게 물으면서 주차할 곳이 없어서 전쟁터와 같았던 칠곡휴게소 상행선 (23:40경) 카메라를 꺼네서 그 공간들을 스케치한다.
칠곡 상행선 텅빈 휴게소를 스케치함 (파업전 이시간이면 빈틈이 없음)
이렇게 몇군데의 휴게소를 들어가보았지만 상황은 마찮가지였다.
내가 도착한 곳은 인천항 앞이다. 인천지부 동지들이 거점을 두고 투쟁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쯤 되었다.
20여명의 동지들이 막걸리 잔을 나누며 다음 투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중에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절반이상이었다.
나를 모른다는 이야기는 최근에 신규가입한 조합원이었다.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면서 ‘안녕하세요 화물연대본부장입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다가가니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인사말을 끝내자 말자 투쟁복(조끼), 머리띠를 지급해달라고 한다.
그 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2003년 5월 파업이 생각났다.
03년 포항지역 총파업당시 신입조합원을 표시내기 싫어서 조끼한벌에 십만원에 거래가 되기도 하고 머리띠 하나에 2~3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는데 정말 그때가 좋았고 너무나 그립다.
모두들 잠든 천막안과 컨테이너 대형 사무실안에 교도소처럼 칼잠을 청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겠다는 꿈을 꾸며 곤히 자고 있는 조합원들을 보고 끝까지 싸워 승리하자고 인사를 전하고 대림동 사무실로 발길을 옮겼다. 어느새 새벽이 오는지 창밖에 자욱했던 안개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어둠을 헤치고 서광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나는 기절했다.
도착해서 동료들이 나를 깨운다. 눈을떠보니 대림동 사무실앞이다.
도착해서 고생했다는 인사를 겨우하고 2층 투본상황실에 설치되어있는 스티로폼 바닥에 내 몸을 던졌다.
아무생각없이 며칠간 푹자는것이 지금의 소망인데 이 투쟁 반드시 승리하고 그렇게 하겠다. ^^*